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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바울의 머리가 비상 (49) 대머리와 페라리의 증명
작성일
2026-09-08
조회수
15
글 : 황바울 ㅣ 감수 : 성형외과전문의 김진오
작년 7월, 저는 이곳 <황바울의 머리가 비상> 코너에서 주식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코스피가 연초 대비 30% 이상 뜨거워지자, "FOMO를 조심하고 안전하게 투자를 하라”고 당부드렸죠.
혹시나 제 얘기를 귀담아들으신 분이 계신다면 죄송합니다. 그때 쓴 글의 제목이 <코스피 3000 시대 : 포모와 탈모>입니다. 지금 코스피는 폭락해서 7000 언저리입니다.
그래도 작은 위로를 드리자면, 저는 그때 페라리를 샀습니다. 자동차를 산 건 아니고, 페라리 주식을 샀죠. 많이 떨어졌습니다.
특히나 5월 26일에는 8%가 넘게 폭락을 했죠. 실적 발표가 아니라 신차 발표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페라리의 첫 전기차 ‘루체’는 그야말로 쇼크였습니다. 주가가 박살 났을 만큼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으로 쇼크였죠.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페라리의 회장직을 맡았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가 "엠블럼을 떼어냈으면 좋겠다" 라거나 "중국에서도 베끼지 않을 디자인" 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주주로서 변명을 조금 해보겠습니다. 요즘은 자동차를 예쁘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보행자 안전 규제 때문에 앞코를 날카롭게 뽑을 수 없습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차체가 둥그스름한 비누 같아야 하고요. 어쩌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유명한 디자인 명언대로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된다면, 페라리라는 브랜드 자체가 부적절할 수도 있겠네요.
자동차에서 벗어나 헤어스타일을 얘기해볼까요?
미학적인 장식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기능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훌륭한 헤어스타일은 무엇일까요?
머리카락 자체가 장식적 요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요소를 제거한 빡빡머리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헤어가 없는데도 헤어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요. 빡빡머리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해서 이동 효율을 높입니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드는 시간과 자원 또한 아낄 수 있습니다.
물론 두피 보호, 자외선 차단, 체온 조절 같은 머리카락 본연의 기능을 들며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빡빡머리는 일종의 ‘모듈형 플랫폼’입니다. 필요에 따라 비니나 헬멧을 얹으면 머리카락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헤어스타일은 기능을 우선시하지 않아서 대머리를 피곤하게 만들죠.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혹평을 받으며 주가를 떨어뜨린 페라리 루체가 막상 시장에서는 잘 팔린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끼워팔기 의혹을 제기합니다.
에르메스의 가방을 사기 위해서는 접시나 스카프를 사서 매장 실적을 쌓아야 하듯, 페라리의 한정판 자동차 구매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루체 같은 차도 사주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거죠.
애정의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루체의 인기를 진정한 럭셔리의 완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루체의 가격은 약 9억 원에 달합니다.
아름다운 차도 아니고, 못생긴 차에 그 큰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한 부의 과시라는 논리입니다.
이 흥미로운 논리는 탈모인들의 사랑으로도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머리카락이 없는데도 곁에 머무른다면 어느 정도 애정이 증명되는 셈입니다.
머리카락이 떠날 때 함께 떠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큼 확실하죠. 또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면 너도나도 사랑을 과시하느라 바쁩니다.
커다란 꽃다발이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 사진을 올리면서요. 그런데 진정한 사랑을 과시하려면, 탈모인을 만나세요.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줄 겁니다. 물론 진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라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든 말든 상관없겠지만요.
황바울
- 2015 창비어린이신인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 2018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수상
- 2020 진주가을문예소설 부문 수상
-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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